[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나는 연행되어 가던 날, 아는대로 다 불었어. 네가 알다싶이 나는 겁이 많아. 고문당하기는 싫었어. 어차피 고문을 당하면 다 불게 될 걸 굳이 버티고 싶지 않았어. 내 서류가 왜 누락되었는지 정말 모르는 이야기야. 유 실장에게 물어보고 해명하겠어.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김 형사와 현일은 거의 동시에 잠에서 깨어났다. 김 형사가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 문쪽으로 다가갔고, 현일도 엉거주춤 이불속에서 기어나왔다. 싸늘한 기운이 콧등을 스쳤다.상우는 주점 광장의 내부를 휘둘러 보고 있었다. 주점안을 다람쥐처럼 빠르게 오가는 아르바이트 여학생들의 바쁜 몸놀림과 결코 어둡지 않은 밝은 조명이 그가 양주를 마시고 칵테일을 마시던 나이트클럽이나 칵테일바의 현란하고 화려한 조명에 비해 더 따스하고 정겨운 느낌으로 다가왔다.무얼 생각하라는 건가?현일은 계속 대걸레자루를 휘둘러 벽면에 놓인 대형수족관을 박살냈다. 물과 함께 관상어들이 바닥으로 쏟아져 나와 퍼덕거렸다. 그것을 본 한 녀석이 열대어를 잡으러 앞으로 나섰다. 현일은 놈을 위협하기 위해 대걸레자루를 그 놈 쪽으로 휘둘렀다. 놀라 뒤로 몸을 빼던 녀석이 바닥이 미끄러워 엉덩방아를 찧고 수족관에서 흘러나온 물 위에 넘어졌다. 밖에 있던 녀석들이 사무실 문을 열고 뛰어들었다. 현일은 그제서야 대걸레자루를 거둬들였다.29. 유보된 날들[그는 지금 내 옆에 있다. 그가 너와 통화하고 싶어한다.]비몽사몽간에 취해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진숙이 현일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는 그녀의 뒤를 따라 김 형사와 소연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으로 걸어갔다. 아래로부터 불어온 바람이 그들 사이를 뚫고 빠르게 지나갔다.[야! 이제 엎드려.]신호등은 이미 붉은 색으로 바뀌어 있었고, 차들은 그의 앞을 쏜살같이 지나쳤다. 갑자기 심한 갈증을 느꼈다. 가슴이 쿵쿵 소리를 내며 뛰기 시작했다. 신호가 녹색으로 바뀌자마자, 그는 단거리 주자처럼 횡단보도를 건너 여자가 사라진 골목길로 냅다 뛰었다. 여자는 어디에도 흔적이

그날은 종일 비가 내렸었다. 매스컴에서는 올해 장마는 예년보다 일찍 시작되었다고 떠들어댔다. 이른 시간이라 가게에 손님도 없고 무료하기도 해서 우산을 들고, 현일은 오줌싸개처럼 밑바닥으로 빗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갔다. 비오는 거리는 더 없이 쓸쓸했고, 까닭 없이 우중충했고, 철 지난 바다처럼 을씨년스러웠다.사내들은 그렇게 말하고 방을 나갔다.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상우는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신음하며 최악의 절망감을 맛보았다.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조차 느낄 수가 없었다. 이미 그의 몸은 그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의 정신은 이미 그의 육신에서 분리되어 먼 곳을 떠도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몸이 자꾸만 땅속으로 꺼져 들어가는 듯한 어지러움을 느끼며 가사상태로 누워 있었다. 귓가에 윙윙하는 바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그제서야 녀석들이 현일을 알아보고 길을 조금 열어주었다. 몇 번 형을 따라왔을 때, 사무실이라고 안내되었던 곳의 문을 기척도 없이 밀고 들어갔다. 전에 형은 그 사무실에서 무엇을 하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물론 현일도 묻지 않았다. 형이 사무실을 새로 차린 것으로 치면 무려 십여 번도 넘을 정도였으니.우리는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아주 단촐하게 남편이 공부했던 절에서 친구 Y만 참석해 간단히 식을 올렸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 우리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그이와 같이 산사에 왔던 고문당한 여자가 제 3국에서 극비문서를 폭로하고 그의 정체도 폭로시켰다.[명심해. 빠른 시일 내에 어머니를 찾아오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거야. 이제 시간도 별로 없을 것 같으니까. 내 말을 우습게 여기다가는 김 형사를 만나는 낭패를 당하게 될 거야. 참! 아가씨도 온전하게 살고 싶으면 한시 바삐 이 작자들과 인연 끊는 게 좋을 거이다. 잘 모르는 거 같아 내 한 마디 충고하는 거니까 새겨 듣는 게 이로울 거유.]충헌거사가 보낸 듯한 것도 모두 타자로 쳐져 있었고, 그의 소재를 알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장부는 코스모스회